케이트 블란쳇/기타

인터뷰글/움짤

고삐 2014. 8. 1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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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재스민'의 케이트를 만나다! ELLE DIVINE CATE

화이트 버튼 다운 셔츠, 울 소재 드레스는 모두 Giorgio Armani.

지난 2년간 남편과 함께 일궈온 시드니 극단 운영을 잠시 멈추고 영화 [블루 재스민]의 재스민으로 돌아온 우아함의 대명사, 케이트와 나눈 일상과 이상 사이.

화창한 날씨가 기분 좋은 예감을 선사한 지난 늦여름, [엘르] 스태프들은 정성스레 케이트 블란쳇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예정된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우아한 금발 머리를 휘날리며 로스 엔젤레스 밀크 스튜디오의 메이크업 룸으로 뛰어들어 오는 케이트를 만났다. 문제는 이번 LA 일정이 그녀의 스케줄에 비해 너무 짧다는 거였다. 애니메이션 녹음과 화보 촬영, 영화 프리미어와 TV 녹화 등 5일이라는 물리적 시간에 비해 넘치는 스케줄은 ‘온 타임’을 지키기엔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여러 차례 사과하는 케이트의 흔들림 없이 정직한 태도와 진심에 압도된 때문인지, 여러 번 일정이 바뀌고 시간이 지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녀가 원망스럽진 않았다. 게다가 모든 건 충분히 이해 가능한 상황이 아닌가.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새 향수 ‘씨(Si)’의 뮤즈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그녀를 강력한 오스카 여우주연상 후보로 만든 우디 앨런의 영화 [블루 재스민] 홍보 등으로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탓이었다. 결국 화보 촬영은 LA의 마지막 일정으로 아슬아슬하게 막을 내렸지만 곧 시드니행 비행기에 탑승해야 할 그녀와 인터뷰를 고집할 순 없었다. 거듭 양해를 구하는 그녀와 전화 인터뷰를 하기로 하고, 여러 차례 통화를 거듭하며 인터뷰의 막을 내렸다. 분주한 일정 중 짬짬이 시간을 내 차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그녀는 이미지만큼이나 우아하고도 진솔한 여자였으니 어찌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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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블루 컬러의 실크 블라우스는 Giorgio Armani. 버건디 팬츠는 Christopher Kane. 버건디 펌프스는 Christian Louboutin. 브레이슬릿은 ‘스네이크 컬렉션(Snake Collection)’으로 Bulgari.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레드 골드 ‘샤프하우젠(Schaffhausen)’ 시계는 IWC.

울 소재의 화이트 드레스는 Proenza Schouler.

시드니에서의 일상은 어때요?
평소의 삶은 ‘길 위의 향연’이에요. 하지만 일단 집에 들어서면 모든 것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해지죠. 남들과 똑같은 일상, 그러니까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준 다음 점심을 먹고,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거나 애완견을 산책시키는 일 말이에요. 시드니 극단(Sydney Theatre Company) 일을 잠시 중단한 상태이기 때문에(남편인 앤드류 업톤이 극단의 예술 감독이자 CEO로 있다), 한 번에 한 가지씩만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요.

최근 프로젝트는 뭐였나요?
얼마 전에 이자벨 위페르와 함께, 장 주네의 연극 [하녀들 The Maids] 공연을 마쳤어요. 작년엔 우디 앨런의 [블루 재스민]과 테렌스 맬릭의 [나이트 오브 컵스]에 출연했고요. 맬릭의 영화는 내털리 포트먼, 테레사 팔머와 함께 촬영했는데 내년에 개봉할 예정이에요.

대단한 감독들과의 작업이네요.
맞아요. 하지만 두 촬영장은 극과 극이라 할 수 있어요. 우디 앨런은 대사와 배우들 그리고 상황 사이의 긴장감에 흥미로워하는 반면 테렌스 맬릭은 최종 스토리가 어떻게 끝날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로 작업이 계속되니까요. 맬릭은 분위기, 배우들 간의 시적 작용에 초점을 맞추거든요.

매력적인 역할을 찾는 게 어렵지 않나요.
그동안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블랑쉬 뒤부아, [빅 앤드 스몰]의 로트 코테, [헤다 가블러]의 헤다 등 연극 무대에서 아이콘적인 역할을 맡을 수 있어 행운이었어요. 하지만 영화는 연극과는 달리 배우가 욕심내는 역할이 결과의 결정적 요소가 되는 건 아니에요. 난 큰 역할보다는 배우로서의 실험정신을 발휘할 작품에 더 관심이 있어요. 그리고 어떤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지, 어떤 감독과의 작업인지를 중요하게 여기죠. 종종 흥행이나 관객 평점 같은 결과는 내가 최선을 다해 보여주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가 있으니까요. 한마디로 예측불허죠. 그래서 난 내가 가진 것, 발휘할 수 있는 부분에 흥미를 느끼는 감독과 작업하는 게 가장 보람 있다고 생각해요.

필모그래피를 보면 강한 캐릭터가 주를 이루는데요.
그랬나요? 아마 쉽게 할 수 있는 것엔 도전하고 싶지 않은 내 성향 탓도 있을 거예요 (웃음). 물론 욕심도 났을테죠.

자신이 선택한 캐릭터를 통해 뭔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그렇진 않아요. 난 배우지 교육자가 아니니까요. 배우로서 관객들이 느끼고 즐거워한다면 그걸로 충분하죠. 예를 들어 [블루 재스민]의 재스민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위기 끝에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무너지는 걸 경험했을 거예요. 또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밑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마치 거울처럼 바라봤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거울을 통해 의미를 찾아내고 스스로를 재건하는 건 결국 관객의 몫이에요. 난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뿐이죠. [블루 재스민]의 스토리는 굉장히 현실적이에요. 재스민은 환상주의자인데다가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3년 전 가족과 시드니로 이사하고 극단 운영을 시작했는데, 그동안 어땠나요.
문화적 가치와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는 시간이었어요. 호주엔 재능 있는 작가, 디자이너, 배우, 감독, 프로덕션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알았고요. 그들의 작업에 생기를 불어넣고 흐름을 돕는다는 건 정말 유쾌한 일이었어요. 영감과 에너지를 얻은 시간이기도 했죠. 배우로서, 이처럼 강렬하게 몰입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인 것 같아요.

함께 극단을 운영하고 있는 남편과의 작업은 어떤가요?
편해요. 흔히 부부가 함께 작업하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하는데 우린 늘상 협업을 해 온 사이니까요. 부부끼리 일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인 동시에 이상적인 과정을 만들 수도 있어요. 아마 다른 누군가와 작업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영화와 연극에서 발견하는 재미가 다른가요.
연극은 관객들과 직접 소통이 가능하잖아요. 일단 무대에 오르면 관객들의 시선이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움직이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반면 영화에선 그 반응을 단지 박스 오피스라는 수치로 참고할 수 있을 뿐이죠. 예술적인 관점에서만 박스 오피스로 영화의 성공을 판단하는 건 잘못된 거예요. 극장을 떠날 때 관객들의 속내가 어떤 것인지 판단할 수 없으니까요. 내 연기에 대한 즉각적인 공유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연극은 몹시 매력적이죠.

할리우드와 멀어지진 않았나요.
난 시드니의 연극 무대에서 출발했고 한동안 성장했고 다시 돌아왔어요. 그리고 지금이 연극 무대와 영화 출연을 비교할 상황은 아니라고 봐요. 오히려 두 매체 사이를 넘나들 수 있는 계기가 되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극단을 운영하면서 너무 연극 무대에만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영화 커리어로부터 멀어질 거라고들 하죠. 하지만 내 입장에선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호주에는 정말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많아요.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매력적이죠.

카디건은 Giorgio Armani. 블랙 레더 톱과 팬츠, 벨트는 모두 Calvin Klein.

일과 가족 사이에서의 균형은요.
모든 일하는 부모들이 그렇듯 일과 생활의 밸런스를 유지한다는 건 곡예에 가까운 것 같아요. 난 묘기를 부리면서도 자주 그 바퀴에서 굴러 떨어지거든요. 하지만 세 아이를 키우는 동시에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에요.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어요. 그건 반대 방향의 많은 것들을 끌어당겨야 한다는 걸 뜻하니까요. 서로에게 정신적 위안이 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족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이죠.

‘여성은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나요.
남자든 여자든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어요. 물리적으로 그럴만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에요. 일에 몰두하면서도 가족에게 헌신한다는 건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요. ‘모든 걸 다 해낼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히려 커다란 압박과 스트레스가 될 수 있으니까요.

세 아들을 기르는 남다른 양육법이 있다면요.
아이들은 성별과는 별개로 완전히 다른 개성을 가진 존재예요. 난 아이들이 무엇보다도 좋은 인간성과 연민, 남에게 베푸는 마음을 갖기를 바래요. 아이들을 양육한다는 건 굉장히 자기성찰적인 과정인 것 같아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새 향수 ‘씨(Si)’의 뮤즈가 됐어요.
뭔가 특권을 부여 받은 느낌이에요.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미스터 아르마니는 모든 걸 탐구하고 아우르는 우주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당신이 사는 방식, 그러니까 당신이 누구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와 관련된 세계이죠. 그를 진심으로 존경해요. 나에게 향수는 삶에 대해 ‘예스’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아요. 여성의 모든 측면을 긍정하는 의미이죠. 그의 세계는 위험하면서도 흥분되는 매력을 지니고 있고, 동시에 예의 바르고 감각적이면서도 개성 있죠. 그런 그의 가치들을 표현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명예로운 일이죠.

향수가 여성스러움의 중요한 일부라고 생각하나요.
여성성은 다양하고 개인적인 것이지만, 스스로 타고난 것에 대해 편안하게 자신감을 느낄 때가 가장 여성스럽다고 생각해요. 향수는 미묘하면서도 중요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게 만들어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표현해주죠. 개인적으로 향수는 사람보다 먼저 공간에 들어서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나중에 그 공간을 떠날 때의 잔향과 기억이 진정한 향수의 파워이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어떤 패션을 즐기나요.
패션의 새로운 아이디어와 불안정한 리듬을 좋아해요. 하지만 그 룰에 지배당하진 않으려 해요. 내 스타일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돼 왔는데, 하지만 정교한 테일러링에 대한 애정만큼은 변함이 없어요. 미스터 아르마니를 아주 많이 좋아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예요.

빅 패션 아이템을 처음 구입했던 건 언제였나요.
틴에이저 시절, 근사한 테일러링의 남성용 수트가 정말 탐났거든요. 드라마 스쿨을 졸업할 무렵에야 비로소 수중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아르마니 수트를 샀어요. 내가 여전히 갖고 있고 지금도 종종 입는 아이템이죠. 아르마니의 패션은 시간을 초월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모던하면서 애쓰지 않은 자유로움, 게다가 클래식하면서도 굉장히 시크한 타임리스 아이템들은 더 특별하죠. 난 늘 미스터 아르마니가 구체화한 우아함과 심플함, 시간을 초월한 디자인 아이템에 열망을 갖고 있어요.

당신은 케이트 블란쳇이라는 존재를 즐기는 편인가요.
난 ‘CB’, ‘스위트하트’, ‘케이트’,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려요. 공적으로 활동할 때는 ‘케이트 블란쳇’이고 뭔가에 사인을 해야 할 때도 이름을 쓰죠. 하지만 유명세는 한때의 즐거운 비명이면서도 굉장히 제한적인 것에 불과해요. 끊임없는 노력으로 능력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완벽한 자기관리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공허한 것이 되어버리죠. 즐기면서도 노력하는, 그런 사람이 되려 해요.

에디터
채은미
아트 디자이너
이영란
캘리그래피
백지연
발행2013년 11월호
ELLE 표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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